어떤 순수한 두 어린 아이가 즐겁게 공놀이하다가, 그만 높은 지붕 위에
공이 올라가 곤란한 지경에 처합니다.
이에 두 아이는 가지고 놀던 공을 반드시 회수하고자 하여
옆에 있는 사다리를 지붕 처마에 걸쳐 놓고, 어떡게든 올라가려 합니다.
그런데...
뭘 좀 안다 하는 한 무리의 어른들이 몰려와
아이들이 지붕에 기대어 놓은 사다리를 보면서 이런저런 말이 오갑니다.
사다리는.. 이런 저런 재료가 제일 적당하니까 꼭 그걸로 해야 한다느니,
사다리는.. 어느 정도의 기울기 각도로 놔야 제일 안전하다느니,
사다리는.. 디딤 틀 간격이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느니...
올라가서 공을 회수해 줄 생각은 없이, 그저 말잔치만 오갑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두 아이는... 어른들의 열띤 갑론을박을 뒤로하고
여자 아이는 오빠가 딛고 올라갈 사다리를 붙잡고 안전하게 고정시키자
남자 아이는 무사히 지붕 위로 올라가 공을 취합니다.
합력하여 뜻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거듭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합력하여 목적을 달성한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여 어른들처럼 이런저런 사다리 제원을 잘 몰라도
단지 사다리가 무엇에 쓰는 용도인지 알기에, 그대로 실행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뭘 좀 안다는 똑똑한 어른들은 올라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다리 자체에만 관심 있는 것입니다.
수영 이론을 잘 알아도 수영을 못 한다면 그 앎이 뭔 의미가 있습니까...
수영 이론을 아는 것과 수영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의 이 모습이 뭘 의미하는지 지혜 있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즉, 아이들(거듭난 사람들)은..
천국에 올라가는 복음(사다리)의 본질에 집중하는데,
어른들(복음을 알기만 하는 사람들)은.. 오를 생각 없이 이론에만 잡혀서,
성경 말씀의 본질적 목적과 능력은 외면하고 있으니,
그저 늘 말잔치만 오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론)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거룩)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9~20절)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말씀은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상적인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능력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닮은 빛과 소금의 거룩한 영성입니다.
평소의 삶이... 거룩한 영성을 기반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게 참된 능력입니다.
또, 거기에 참예한 거듭난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장 45절 / 베드로전서 1장 16절)
진리를 정밀하게 알았다고 해서
지적 유희로만 갈무리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즉, 말씀에 대해 아는 것이 곧 믿음이라 확신하게 하여, 육이 계속 흘러도
자신의 눈 속 들보를 못 보게 만들어 멸망으로 유도하는...
사탄마귀의 궤휼입니다.
거기에 잡힌 자는 복음을 지식화하여 이론만 앞세울 뿐 실체가 없습니다.
믿음은 주님께서 바라는 뜻이 거듭난 성도를 통해 발현되는 실상이지
포장지만 화려하게 꾸미는 도구가 아닙니다. (히11:1~2)
이처럼, 말씀을 이론으로만 아는 사람은, 제 눈의 들보를 못 보기 때문에
회개할 수도 없으려니와 빛과 소금의 능력이 나타날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은 자기만족의 도구로만 쓸 뿐입니다.
"그들(바리새인,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23장 3절)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지식만 앞세우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장 20절)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타나는 과정이 꼭 있습니다.
누구든지 심장으로 말씀을 접했다면.. 말씀이 내 속사람을 푹 찌릅니다.
그리고, 내 눈속에 숨어있던 들보를 보게 하여 애통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능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그래서 회개와 거듭남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에 머물도록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세상을 비추는 능력이 실상화 되어, 삶에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꽃처럼 어두운 세상을 향해 거룩한 빛을 발하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의 진짜 역할이자 본질적 능력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장 1절)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게 성경 진리에 흡수된 참믿음 입니다.
사다리 자체를 알기만 하거나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아리속의 가득한 맹물일 뿐 변화된 포도주가 아니기에
천국 잔치에 쓰일 수도 없고, 진리 안에서의 진짜 자유함도 없습니다.
내용물 없이 그저 포장지만 매우 화려하게 보이므로
바리새인처럼 믿음이 좋아 보일 뿐, 허다한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사다리로 올라가는 사람입니까, 알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믿음과 구원이라는 가장 중요한 이 명제는...
회개, 자기 부인, 거듭남, 순종 등 반드시 십자가를 동반합니다.
이걸 통과해야 믿음이고, 이런 사람이 구원의 문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능력의 사다리(말씀)를 직접 붙들고 의지하여 올라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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