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제에 대해...
이 시대 허다한 선생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특별히 어려운 점 없이 참 쉬워 보이며 구원은 떼논 당상처럼 느껴집니다.
삶이 어떻든 그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서, 십일조와 봉사 잘하면...
누구든지 은혜로 대부분 구원될 것 같습니다.
또, 교인들이 실망할까봐 구원이 어렵다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주여주여'만 하면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인기 여행상품 같습니다.
그런데, 매우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참된 구원의 실상은...
이 시대 허다한 선생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아래의 예수님 말씀은... 이 시대 대부분의 선생들이 거의 가르치지 않고
'쉬쉬' 하며 꽁꽁 숨기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3장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거짓 선생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거짓 선생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태복음 7장 13-16절)
위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제시한 구원의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며 못을 박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구원의 길은 협착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구원의 길에 있어서 협착하다 할만한 무슨 특징이 있습니까?
어느 부분의 가르침이 협착한 길입니까...
솔직히 저는...
이 시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협착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연약한 죄성은 어쩔 수 없으므로, 이방인처럼 살아도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 은혜로 다 구원시켜준다는데...
무슨 협착할 일이 있습니까...
믿음(?)이 중요할 뿐, 성령의 열매는 구원과 상관없다 가르치니,
이 가르침이 너무 인기 좋아, 찾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인데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쉴 때, 교회 출석하는 게 협착한 길입니까?
이방인들이 노래방 가서 즐길 때, 찬송가라도 부르면 협착한 길입니까?
남들이 소설책 읽을 때, 근엄히 성경책 읽고 끄덕이면 협착한 길입니까?
허다한 이방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데도 단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며...
'주여주여 믿~~~습니다' 하면, 이런 상황들이 협착한 길의 증거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서두의 성경 말씀(마 7:13-16)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위 말씀 중 15절을 보면... 생명으로 가는 길은 협착하기 때문에
찾는 자가 적다고 하시면서,
느닷없이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강력히 경고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시대로 표현하면, 거짓 선생.. 즉, 거짓 목사들입니다.
이처럼, 갑자기 거짓 선지자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협착한 길을
거짓 선생들이 사망의 넓은 길로 변개시키는 걸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협착한 길을 넓은 길로 변개하는 거짓 선생을 조심하라는 말씀은...
특히, 이 시대를 향해 경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세로 갈수록, 거짓 선생들이 더욱 많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 선생들이 교인들을 상대로 노략질한다 말씀하시는데,
노략질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아실 겁니다.
주님 말씀을 실상 그대로 가르치면 노략질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육으로 사는 것을 전혀 책망하지 않고... 구원을 쉽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은... 교인들 대부분이 또 그걸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수요가 넘쳐나니, 공급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선지자(거짓 목사, 선생)들은 거짓을 예언(교인들이 원하는 말)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교인)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 5장 31절)
때(말세)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기록된 진짜 복음)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구원을 쉽게 가르치는 교리와 선생)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하여, 이 시대의 허다한 선생들은...
주님께서 왜 구원의 길이 협착하다 하셨는지, 가르치길 꺼려합니다.
그저..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협착한 길을 넓은 길로 만드는 것에
분주합니다만, 그렇게 한다고 주님께서 정하신 협착한 길이...
선생들 가르침처럼 넓고 평탄해지겠습니까...
지금은 당장 교인들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긁어주며 희망은 줄지 몰라도,
결국은 희망고문으로 끝날 것이고, 호흡이 멈춘 후...
심판의 그날이 되어, 영원한 지옥 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어느 목사님께 구원이 왜 협착한 길인지 설명을 부탁했지만,
그분은 갑자기 당황하여 매우 곤란해하는 걸 봤습니다.
협착하다는 의미에 대해, 그냥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하신 말씀이라며
애써 얼버무리며 어물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 목사님도...
자신이 가르친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서로 모순된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들 자신도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똑같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의의 주님이란 사실을 감추고,
은혜(?)와 사랑만을 가르치므로 그저 믿기만(?) 하면...
쉽게 구원되는 것처럼 가스라이팅하듯, 평탄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거짓 선생과 참 선생을 열매로 확실히 분별하여
거짓 선생들의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말라며, 경계를 삼은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 선생들이 거듭난 성도들조차 넘어뜨리려 우는 사자들처럼
폭주하는 말세이니, 참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거짓 선생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교인)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가르침은 허다한 선생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릅니다.
구원의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지.. 세상처럼 인기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길은 십자가를 들고 가면서 철저히 낮아지는 길입니다.
말뿐이 아닌, 실상으로 주님께 철저히 굴복해야 하는 길입니다.
내가 없어지고, 주님만이 나타나야 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높아지고, 출세하며, 내 성공과 영광을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육의 속성과 세상 흐름을 역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가면
결코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을 만한 능숙한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던지는 돌(핍박)에도 맞을 수 있기에
협착한 길이 어떤 길인지 아는 분들도, 그 길을 피하려고 합니다.
하여, 들어가길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고, 찾는 자가 적다 하신 것입니다.
그 길은 자기 부인 없이는 '절대' '절대'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것이 죽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회개)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주님은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셔서
말로만 복음을 가르친 게 아니라, 실제 본까지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본이 협착한 길로 가는 성도의 모습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거듭난 성도도 믿음의 성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그 본질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 길이 협착하고 좁아도, 거듭난 성도는... 넘어졌다 일어나길 반복해도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그 길을 꼭 가고자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의 존재 이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장 15절)
예수님을 진정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또 직접 본을 보인 것처럼,
철저히 낮아지고, 겸손하며, 인내할 줄 알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아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영성과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므로,
단호한 결단으로 나를 부인 회개하며,
새 생명으로 변화되길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 삶이 참된 자유함이며, 마귀 공중권세로부터 승리하는 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마귀의 유혹 때문에
주님을 떠나 한없이 높아지려는 삶을 살고자 하여 멸망했는데,
왜! 다시, 마귀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 짧은 기회의 삶을 허비하며
마귀가 인도하는 넓은 길로 이끌리려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시고
마귀의 올무에서 해방하셨는데, 왜 또 그 길을 가시려 합니까...
부디~ 거듭나서, 협착한 길로 가셔야만 합니다.
이 길을 찾는 이들이 적겠지만, 그 적은 수에.. 저와 여러분들이 포함되길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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