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당하는 시험(temtation)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믿음이 없어서 받는 시험이 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시험은 이런 유이다.
두번째는 공동체 속에서 관계의 불편으로 인해
감정이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때 발생하기 때문에
그것이 발생된 장소가 교회라서 그렇지,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발견되는
"삐짐"현상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시험은 야고보가 말하는 "불시험"이라든지,
욥에게 경각간에 닥친 "시험들'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앙의 정절 때문에 당했던 "시험"이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당했던 "시험"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때로 시험 든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이 약해서"또는 "기도하지 않아서"
시험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다.
주님께서 기도하지 않아서 믿음이 없어서 시험을 당하는가?
오히려 시험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때문에
오는 시험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참 이상하게도 이단사이비들이 성도들을 미혹할 때
사단이 주님을 시험 한것처럼 말씀을 이용한다.
사탄이 쓰는 말은 "기록되었으되..."이다.
성경말씀을 이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곡해하고 변질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주님도 "기록되었으되.."라고 대답을 하시지만
마귀와는 정반대로, 가감없는 진실한 말씀의 인용이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사실 성도가 시험을 당해 어려움을 겪는 주요 원인은
말씀을 자기 편리한대로 해석하여
자신의 상황과 여건에 교묘하게 잘도 갔다맞추기 때문에
그 잘못의 휴유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하와가 그랬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말씀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3)고 왜곡하고 있다.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틀린다.
분명하게 "죽는다"는 말을 "죽을까 하노라"고
살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사탄의 시험을 받아 들이게 하기 위한
우선 정지작업이 말씀의 변개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유익의 갈등 속에서 넘어지는 이유다.
말씀을 자꾸만 자신의 유익 위주로, 편리대로 해석하고
곡해할 때 넘어지게 된다.
이미 세상 것을 택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말씀을 억지로 거기에 맞게 합리화시키는 작업을 하게되고,
그것을 달라고 기도한다,
이미 자신이 작정하고 결정한 것을 무조건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결정할 여건을 주지 않는 기도가
제대로 된 기도일리가 없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였느니라 (마4:10)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이 좋을 때
성령이 충만할 때 신앙생활의 기쁨이 충만할 때
사단의 시험을 주의해야 한다.
말씀대로 순종하자.
자신의 환경과 욕심에 따라 말씀을 변개시키지 말자,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분명히 하고
모든 영광과 존귀는
하나님께만 돌리는 신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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