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
믿음으로 살려고 해도
방해하는 세력은 늘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세상에서 수많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를 잘 참아내는 이유는
살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그런 우리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는
그런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는 일에
늘 비겁하게 피하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도 매 맞고 침 뱉음을 당하셨은즉
우리가 받는 박해는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그것을 감당할 믿음이 없다.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살았던 선조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나약해졌다.
어쩌면 우리가 박해를 받지 않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고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요
세상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있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의를 위해 살고자 하면 핍박도 함께 받는다고 하셨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장차 이 땅에 믿음의 시련과 환란의 날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과연 우리는 혹독한 박해와 시련이 불어 닥치는
그날에도 주를 부인하지 않고
당당히 믿음으로 맞설 수 있을까?
믿음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를 깊이 사랑하고
믿음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주님을 버리고
도망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 누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욕하겠는가?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주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누가 자기 유익을 위하여
주님을 팔아버린 가룟유다를 욕하겠는가?
나의 유익을 위하여
신앙의 양심을 저버릴 때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가룟유다보다 내 믿음이
더 나은 자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큰소리치지 못한다.
고난당하는 그날에 나의 태도가
어떻게 돌변할지 나 자신도 모른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현재의 믿음마저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나약한 믿음이다.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만이 그날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