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 1~5절)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실질적 믿으려는 마음이 없이
성경에 나왔으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내 삶과는 별개로 보는 분이 많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 그 자체이며,
말씀이 이 땅과 우리 삶에 운행하시며 생명으로 역사함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면... 말씀도 우리 현실적 삶에 이루어짐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심령 안에 들어오면
나는 주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며, 내가 나를 이끄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 말씀만이 내 안에서 빛의 생명이 되어 나를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거듭남이고, 다른 표현으로... 주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이 나를 이끌지 못하여
옛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모습 그대로에 머물러있다면
내게 복음의 말씀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성경책의 정보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말씀을 생명으로 받지 않고 이론으로만 받은 것입니다.
이론은 포도주로 변화된 게 아니라, 여전히 맹물의 부피만 늘리는 것입니다.
천국 잔치에는 포도주(거듭남) 필요한 것이지 맹물(이론)은 필요 없습니다.
즉, 머릿속에만 저장하는 주님의 말씀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믿음도 아닙니다.
말씀을 심장으로 받은 사람은 말씀 자체가 생명이 되어
나를 지배하기에, 필히 나는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로 이끌립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며 관념적으로만 믿노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말씀(주님)과 동화되어 삶이 말씀이고 말씀이 삶이 됩니다.
말씀을 단 한 구절을 접했더라도 그 말씀이 날 선 검이 되어 나에게 파고들며
나를 주님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고, 내 옛사람을 무너져 내리게 했다면
나는 말씀을 빛의 생명으로 받은 것입니다.
성경을 백 번, 천 번 읽어도
내 심장 속에 박혀 나를 역사하지 못하는 말씀이라면
그것은 생명을 받은 게 아니라, 죽은 지식의 흔적으로만 계속 쌓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여전히 옛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 따로 삶 따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수없이 성경을 읽었어도 생명이 되지 않고 여전히 죽은 채로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머리로만 향하던 말씀이 갑자기 그의 심장 속으로 향하는
놀라운 순간이 발생되기도 합니다.
밋밋하게 보이던 말씀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말씀이 맹렬한 불꽃이 되어 내 심장으로 뜨겁게 파고드는 듯 말입니다.
심장이 오므라드는 듯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왜 눈물이 납니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물을 발견한 듯 영적인 설래임에 확 몰려오며
말씀을 통해, 죄성으로 얼룩진 내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은 내 마음 밭이 어떤 계기(환란, 고난)로 인하여 거기서 벗어나려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그와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역사당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배당을 오래 다니고,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도
나는 부족함이 없다 하며 마음 밭이 메마르고 척박한 심령에 계속 머문다면
아무리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읽어도) 환경이 안 되기에
뿌려지는 족족 다 죽어버립니다.
씨앗을 받을만한 기름진 땅으로 기경 되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내 능력으로는 절대 안 되기에, 주님께 매달려 구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하여, 나를 만나려면 나를 간절히 찾으라는 성경 말씀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오직 주님을 구하고, 두드리고,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찾는다는 의미는 입술의 말이 아니라,
나를 부인 회개할 수 있도록, 내 죄성에 대해 애통한 심령으로 만들어달라는
간청이고, 딱딱한 내 심장을 만져달라는 간절하고 진실된 요구입니다.
이 순간 주님께서는
나로부터 죄성 가득한 악한 육의 속성을 빼앗아버리고자
말씀 씨앗이 생명으로 발화시키려 마음 밭을 주님의 방법으로 기경하십니다.
이 과정이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들 수도 있습니다.
마귀에게 길들여진 묵은 밭(마음)이 기경 되는 과정이 쉽겠습니까...
이 순간이 가장 절실한 인내의 시기입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 밭을 확 갈아엎는 과정이기 때문에 참으로 힘듭니다.
밭을 갈 때, 수도 없이 걸려드는 돌무더기와 잡풀과 이물질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들이 지금까지 암약하며 나를 지배하던.. 악한 육의 속성(죄성)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인데 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면 해산의 고통과 같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이 과정은, 인생에 있어서 저주가 아닌, 축복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미 주님의 통제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거부한다면 굴러들어 오는 주님의 은혜를 스스로 팽개치는 것입니다.
거친 마음 밭의 기경도 없이 어찌 씨앗(생명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겠습니까...
아무리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적인 머리로 성경을 백 번 읽더라도
마음 밭이 척박한 상태에서는
말씀이 이론으로만 쌓이는 좋지 못한 현상만 계속될 뿐입니다.
이는 마귀가 역사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 씨의 발아가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나를 가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고, 곧 멸망을 의미합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씨(하나님의 말씀)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8장 5-8절)
말씀을 수없이 읽었으면서도
삶에서 나에게 변화됨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변화 없는 말씀의 흡수는 나를 교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을 높이며,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박힌 티만 지적하려는
악한 도구로만 쓰이게 됩니다.
말씀은 남을 향하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기경 된 뜨거운 마음 밭으로 들어온 말씀은, 반드시 나를 회개케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주님)이 나와 동화되어(주님과 먹고 마시며)
주님의 말씀이 내 삶을 통해 묻어 나오는 것이, 참된 믿음이고 거듭남입니다.
내 옛사람은 십자가에 죽고 말씀(주님)이 내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 무엇보다 먼저 구할 것은
육적 세상적 만족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달라며 구할 것이 아니라,
마음 밭의 기경(그의 나라와 의)을 위해서, 주님께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즉, 나를 죽여달라고 절박하게 매달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매우 기뻐하며,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탕자가 돌아오길 학수고대하셨듯 말입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아는 게 믿음이 아니라,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며,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를 통해, 삶으로 묻어나와야 참된 찐 믿음입니다.
주님~ 제발~ 저 같은 죄인들이 이 믿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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