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매일 매일 뭔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의 조건은 ‘그것이 더 좋다’ 는 믿음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으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 표본이 될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성경말씀은 최대한 압축하여 간단하게 기록한 것이기에 말씀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상황과 내용을 심사숙고 해보아야 합니다. 당시
모세는 자기의 꿈과 소원을 다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이 될 수도 있었고, 많은 부와 명예와 인기를 누릴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으로
치부하여 포기하고, 그런 것들 보다 하나님 편에 서기로 선택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세속적인 죄악에도 기쁨과 쾌락을 주는 재미가 분명 있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것은 별식과 같아 뱃속 깊이 내려가고, 몰래 훔쳐먹는 떡이
맛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 하루 종일 돈
세는 재미로 살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세상 재미를 선택한 탕자와
소돔과 고모라의 기름지고 부요한 땅을 선택한 롯을 나무라기 힘듭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것들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거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고통과 갈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앞둔 처녀가 아주 멋지고 돈 많은 신랑감을
만났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에 거절할 때, 또는 돈을 잘 버는 직업과
직장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기에 포기할 때의 그 갈등과 고통,
가족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믿음’ 입니다.
모세는 그 “믿음으로”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세상과 나를 거절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세상과 나를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는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 이라 가르치지 않고
‘믿음’을 이 세상에서 더 큰 축복과 행복과 평안과 위로를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히려 진리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십자가 공로로 내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셨다”라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단지 그 정도의 이해는 어린아이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히6:1)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로 자라가야 합니다.(히 5:13-14)
즉 우리는 단지 구원에 대한 초보인 일반적인 교리에서 그치지 말고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히 6:2)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히 11:24) 세상과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장성한
자의 선택입니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 동안 애굽 사람도 아닌 하나님
백성들로부터 불평, 비난, 조롱 심지어 돌로 쳐죽이려는 온갖 능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헌신을 더 좋아했습니다.
만일 우리 앞에도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봅니다.
하나는 내 육신의 꿈과 소원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문제는 거기에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고난, 모욕, 시련, 아픔이 있지만 그곳에는 주님께서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믿음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선택을 하지 않고
중간에 머물면서 믿음이 있노라고 자부합니다. 설령 세상 부귀영화를
택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잠시 잠깐이요 그 결론은 헛되고 헛되도다 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매일 겪는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적 꿈과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 더 커야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주님을 진정 사랑했기에 세상과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믿음은 자라가야 하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지 십자가 아래 맥없이
앉아 구원만 바라는 어떤 개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동사입니다.
믿음은 세상과 나와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들을 다 버리고 그보다 더
좋은 주님의 말씀과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처럼 세상을
거절하고 주님을 따라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 이라고 가르치며,
장성한 믿음을 소유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게 만든다는 것을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히 11장, 믿음 장)
장성한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님 뜻대로 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픈 소원이 생깁니다.(빌 2:13) 그런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며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부어지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거듭남) 성경은 그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은혜의 경험이 없으면 매일의 선택에서 타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믿음’을 간구하는 기도는 늘 해야 할 기도입니다.
한번의 선택이 나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믿음으로” 주님만을 따라가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왕의 자리와 애굽의 보화를 버린 모세가 “상주심”을
바라보며 모든 시련을 견디었듯이 우리도 주님과 진리를 위해 살면서
당하는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렇게 인내로 승리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하늘의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장미 빛 꽃 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길은 외롭고 협착한 좁은 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에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요 14:27)
그리스도인들은 이 체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장성하여 주님만을 따라가기로 선택하고, 그 길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요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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